끄적끄적

도쿄 여행 후기

hahaha_z_sung 2025. 3. 28. 06:44

석사 졸업이 확정지어진 12월부터 졸업을 마친뒤 3월 초 최근 며칠 전까지 나는 꽤나 뒤숭숭했다. 
이렇다 할 만큼 재밌게 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취업준비를 한 것도 아니였다.  그저 그 둘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발만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학사 4년 석사 2년, 26년 인생중 18년을 학업이라는 목적하에 묶여있었다 보니 준비가 되지 않은채로 찾아온 졸업이라는 자유가 굉장히 낯설었다. 그래서인지 취업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어놓고 선뜻 손이 잘 가질 않았다. 하긴 해야겠는데 왜 해야할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명분이 없으면 움직이질 않는다. 잠깐이지만 아예 다른 길을 한 1년만 해볼까란 생각도 했다. 


아무튼 그런 상태에서 새벽 3시까지 좀비처럼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고 5박6일 일정으로 당일 도쿄행 오후 12시 40분 비행기를 예매했다. 밤을 샌 채로 짐을 싸기 시작했고, 공항에서 도쿄 여행책을 한 권 사서 비행기에 탔다(극한의 P). 그렇게 어찌저찌 도쿄에 도착을 해서 3일간 도쿄의 주요 관광지들을 돌았다. 여행만 오면 뭔가 달라질줄 알았는데 그렇게 기분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도쿄의 물가는 비쌌고 사람은 정말 많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침에 러닝을 헸다가 일전에 부상을 입었었던 무릎이 걷는 내내 욱신거렸다. 괜히 왔다고 생각했다. 무턱대고 5박6일이라는 긴 일정을 잡아버린게 조금 후회됐다. 


그렇게 3번째날 밤 숙소 근처의 바에 갔다. 그 곳엔 체격이 크고 남자답게 생긴 21살의 직원이 있었는데(코에 코뚜레같은 피어싱을 뚫은 모습이 잘 어울렸다) 영어도 한국어도 전혀 하지 못하는데 혼자 들어온 나를 위해 계속해서 제스처와 번역기를 돌려가며 말을 걸어욌다. 물론 나도 전혀 일본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옆 테이블의 스웨덴 커플, 일본인 테이블 하고도 잠깐씩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그 짧은 2시간 남짓한 시간이 정말 재밌었다. 그제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나는 여행 자체도 좋아하지만 여행지에서 새로운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걸 더 좋아한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계속해서 나를 소개해야 하는데,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더 많이 배우는 것 처럼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 자기소개서의 “본인을 자유롭게 소개해주세요”는 정말 너무나도 싫은 문항이지만 이런 자리에서 날 소개하는건 싫지 않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더 잘 알게될수록 많은 위로를 얻게 된다.

 

그리고 4일째에는 하코네라고 하는 온천 마을로 유명한 도쿄 근교에 있는 곳을 갔다. 거기서는 게스트 하우스를 잡았는데 나 빼곤 다 유럽권 여행객들이었다. 하코네 관광을 마치고 난 다음에도 저녁에는 그 친구들하고 밤 늦게까지 계속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대화 주제는 각 나라별 빌런들의 특징을 얘기하는거였는데 유럽권에 대한 공감대가 없어서 그들의 농담에 크게 웃진 못했다. 그래도 그냥 분위기가 좋았고 즐거웠다.

 

5일째에는 요코하마로 넘어갔다. 일전에 연구실 동료가 요코하마가 정말 좋다는 말을 해줬었는데, 확실히 좋았다. 도시의 분위기, 풍경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 여행의 마무리를 장식하기 좋았다. 마지막 날 숙소를 요코하마로 잡은게 정말 잘한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돌아왔다. 내가 제쳐두고 떠났던 현실의 문제들이 달라진건 없었지만, 꽤나 마음이 편해졌다. 일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을 때 느꼈던 것처럼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들이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 결론적으론 취업이 하고 싶어졌다. 뭐 이런저런 일 들이 있었지만 그냥 이제는 취업이 하고 싶어졌다. 취준이라는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한 연료가 들어왔달까. 아무튼 이번 여행도 성공이다.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학문  (0) 202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