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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hahaha_z_sung 2025. 3. 28. 06:31

광주에서 친척 누나의 결혼식이 예정 되어 있었어서, 광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책을 읽었다. 글에서 다루는 배경이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보니 괜시리 더욱 몰입이 되었다.

  1.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책을 읽는 내내,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한강 작가가 언급했었던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본 질문은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된 내용이긴 하지만 ‘소년이 온다’도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기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군인들의 만행, 적나라한 학살의 표현과 같은 내용에 분노하고, 슬퍼하곤 한다. 물론, 나 또한 그러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정대’가 제 누나를 위해 학교에서 몰래 칠판 지우개를 챙겨오는 부분이나 젖먹이 시절의 동호를 회상하는 내용과 같은 따뜻한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전체적인 글의 내용과 분위기가 너무 상반되는 내용이어서 일까, 나는 이 남매의 이야기를 보면서 세계가 이토록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2.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처음엔 군인의 총 앞에 죽어나간 사람들이 이 사건의 희생자가 아니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그들은 단순한 테러 혹은 학살의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기엔 그들의 숭고한 죽음이 너무 가벼이 여겨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전태일’, ‘안중근’과 같은 열사들을 단순히 국가에 의한 혹은 일제의 만행에 대한 희생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1980년 광주에서 죽어나간 그들 또한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어떠한 신념을 지키기 위한 순교자와 같이 여겨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3. 집단 광기와 희생양 이론 그리고 기술의 발전

 

군중 심리가 작동할 때, 사람들은 개개인의 판단을 포기하고 다수가 선호하는 의견에 동조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에는 대중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일관된 대상에 대한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불안감에 짓눌린 대중은 그 원인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전가하여 안도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자신이 ‘안전한 편’에 서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 시대에만 머무는 현상이 아니다. 1980년의 광주, 나치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홀로코스트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억 속에 더러 존재한다. 한편으로, 이는 집단을 존속하기 위한 인간이라는 동물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들었던 공포감은 내가 그 당시 광주에 있던 시민이 아닌, 계엄군의 역할로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에 대한 점이다. 나 또한 저렇게 이성을 상실하고 괴물이 되어버리진 않았을까?


최근들어, 나는 내가 사는 세계가 점점 극단으로 분리되고 있는걸 느낀다. ‘종교’, ‘정치’, ‘성별’, ‘나이’ 등등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점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개인화된 정보 제공과 그로 인한 편향된 정보의 습득이다. 현재 혹은 미래에 내가 군중 심리가 작동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존엄한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는것일까?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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